2013년 4월 29일 월요일

색깔이랑 이름을 바꿨다.

색깔이랑 이름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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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기록 1탄

흠 어떻게 보면 남 사정 듣고 나니
내 사정은 별거 아닌 것도 같고
 
난 대학교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기 이전에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감정을 지닌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전혀 아니었다.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도 나름 잘 살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못 살았 다기 보다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게 맞을 거다.)
 
그러고 보니 그 어린 시절에는 계속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쓰면서 살고 있었는데
  (왕따이후 더욱 딜레마에 빠진 영웅들의 이야기가 나왔지만, 악의 검을 지니고 선한행동을 하는 약자의 이야기 이런류?, 과연 선과악이란 무엇인가???결국 시나리오를 반전시키면서
과거의 선한자와 악한자가 모두 권력관계에서 파생되었다라고 시나리오가 결론이 났지만, 그러자 무정부상태로 나가, 그럼 진정한 평화는 무엇인가라는 담론으로 시나리오가 전개될수 있었다. 근데 내가 딴일에 빠졌지)

머릿속에서는 온갖 일들이 다 일어났다.
환상의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패황제 루카, 마법사들, 잃어버린 검, 용사들
 
그 와중에 세계관을 미세하게 계속 연결하다보니
도통 체계가 뭔지 이해가 안돼었다.
 
그냥 우연찮게 상대성이론관련 책자를 보고, 그 연역적인 과정을 따라가 본 후,
그럼 나도 순수하게 연역적으로 이루어진 마법이 있는 세계를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마법문자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때는 합리적인 체계가 문자와는 약간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그런데 어쩌다보니 공과대학(물론 배우는건 비슷하다. 근데 분위기가 잘 안맞는다. 그리고 공학적인 체계는 물리적인 체계보다 아름답지 않다.)으로 가게 된후, 다시 문제가 발생 했다. 과거사가 겹쳐서 세계가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2013년 4월 28일 일요일

기타

 
 집에 간다던 인턴에게서 기타를 하나 샀었다. 40000원정도였나? 열심히 연습해보자고 샀었는데, 누가 가르쳐주지를 않으니 그냥저냥 방안 구석에 심심하게 누워 있다. 아무리 그래도 돈을 주고 샀는데 그래도 한번쯤은 써야 하지 않을까? 해서 가끔씩 심심풀이로 튕기는데, 골무(초크라고 하던가?)같은게 없어서 또 말썽이다. 그래서 열심히 이 방법 저 방법을 궁리해서 써봤다.
 
 맨 처음에는 직접 손을 써서 튕겼다. 손가락의 앞부분(손톱부분이 아니라, 뭐라고 하더라 이걸? 하도 한국어를 안쓰니 까먹었다~~)으로 튕기는데, 굳은살이 배기려고 해서 포기.
 다음으로 써본건 동전이었다. 초크랑 비슷한게, 대나무처럼 잘 휘어지지도 않으니 신나서 튕기는데, 영 쇳소리가 별로이다. 결국 마지막으로 쓴 건, 손의 뒷부분(손톱말고 그 앞쪽인데 이것도 이름을 까먹었다.......)인데 이것도 쓸만한 것 같은데, 어딘가가 불편하다.
 결국 이래저래 포기하고, 손톱으로 열심히 튕기기는 하지만, 가야금도 아니고.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 마이멘싱 시내를 좀 뒤지기 시작했다. 기타가게가 없나 시내 곳곳을 뒤지는데 시내가 오죽지저분하고, 차선이 없어서 차선은 뒤죽박죽 정말 시장판이 따로 없다.있을 물건은 찾지도 못하고 더위로 땀만 잔뜩 흘리고 들어와 집에서 쓰러져버리니.
 
 결국 오늘도 기타는 내 책상옆에 기대어져 잠만자고 있다. 언제쯤 누군가 깨게 할까? , 영웅이 있을리는 없고, 내가 하기는 해야할 텐데, 초크를 구해야겠구나, 가마를 준비해야겠다. 한양(다카)가러 담주에 가야지 또 하탈이라는데
 
 
 
교과서만 읽어서인지 설명만 하다가 수필쓰니 나름 재밌네. 기분이 다른거 같은데 묘하다.
 

2013년 4월 27일 토요일

개발은 공학설계와 비슷하다.

피곤하군
개발은 공학설계와 비슷하다.
설계자체는 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인간심리를 고려했을 때 좀더 효율적이고 삶의질을 고려한 설계가 가능해진다.
 

예를들어 교통로를 건설할 경우,
교통로는 결국 차량들을 질서정연하게 흐르도록
시스템을 구성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차량들이 질서정연하게 흐른다고 가정할 때,
갑작스러운 새치기로 교통혼잡이 일어날 수 있다.
이 경우, 심리적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어떤 호르몬이 분출돼,
흥분상태를 맞이할 수 있게 된다.
그 경우 혼잡상태의 악화를 초래해,
교통혼잡상태에서 질서정연한 상태로 바뀌는데 시간이 증가하게 된다.

따라서 시간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어떠어떠한 이유로 혼잡이 발생했다고 알려줘
사람들의 머릿속을 차분하게 변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예를들어, 어떤 사람에 의해 교통혼잡이 발생했을 경우,
마녀사냥으로 변할 수가 있는데
(방글라데시에서는 누가 길 막으면 가끔 방망이로 그 사람을 친다. 뭐 별일이 다 일어나니까)이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전체 사회상황이 어떠한가를 고려해
어느 정도로 정보를 말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물론 정부에 의한 정보의 차단현상이 발생해 과연 민주정이냐는 비판이 발생할 수 있다.)




개발자체가 어떤 시스템이라면 사람들을 어떤 흐름속에 편입시키는데,
보통 그 사람들의 심리를 고려해서 이루어져야한다.
예를들어 보통 단체심리의 특성을 색깔로 변경해서 지각하는데,
보라색이거나, 어떤 음침한 색깔의 감정이 방글라데시인의 심리에 들어가있는경우가 있다
(잘은 모른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 개발형태의 시스템으로 변화시키느냐?가 주어진 과제라고 볼 수 있다.

보통 센의 접근법을 취할 경우, 빈곤층의 심리를 고려하도록 개발을 설계하게 되며
현행 패러다임역시 비슷하게 나아간다.

정책적으로 무엇인가를 차단시키거나 변경시킬 경우,
그 이유를 주지시켜 시민들의 심리를 안정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래는 다른 이야기

최근에는 스트레스 받으면 예전 일 때문인지 성격이 좀 이상하게 변했는데,
최근에는 안정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렇지만, 코이카자체가 한국조직의 성격상,
정규직은 인력난으로 인한 야근으로 업무효율성을 증가시키는데 무리가 있다.
그런데 역시 한국인의 성격상 한국인의 관습대로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아마 과연 고쳐질지는 의문이다.
고치려면, 인력을 증가시키고 사회의 문화를 단순한 돈이나 물질만능적인 상태에서
계속 좀더 윤리적이거나, 단어를 까먹었지만 삶의질을 고려하도록 설계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미 성장이 거의 완료된 상태에서 고도성장시기에 써먹던 수법을 쓰는건 어렵다.
하지만, 주변사람들은 별 불만없이 순응하며 잘 살기 때문에 나도 최근 의문이다.
과연 굳이 그래야할 이유가 있나? 그냥 이게 가장 완벽한 사회가 아닐까?
이걸 깨야하나? 깨야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삶의 질을 고려해서 사회를 재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상황별로 통제한다.

아버지를 상황별로 통제한다.
 
엄마가 아버지를 통제하고
여동생도 아버지를 윤화시킨다.
 
트래픽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개발을 교통로 건설이라고 은유할 때
심리적인 현상을 고려해서 개발을 실행해야 한다고 보여진다.
벵갈리들의 심리는 한국인들과는 다르다.
또한 잠재되어 있는 빈곤의 심리를 이해하고
그런걸 고려해서(이건 직접 행동으로 해야한다.)개발을 수행해야 한다.
 
아마르티아 센이 천재인 이유를 알 것 같다.
 
가족을 내 손으로 봉합하는건 불가능하다.
난 내 패러다임대로 나가 나중에 합류한다.
그전까지 가족전체는 내 정책대로 움직인다.
아버지는 어려워도
나한테는 간단하다
나는 아버지와는 다른 인간이기 때문이다.

2013년 4월 26일 금요일

난 개발정책에 회의를 느꼈다.

난 개발정책에 회의를 느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아니 그것보다 더 큰 건
본사에서 일하라고 뭐라 그런 후 였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이런저런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자 그냥 내가 왜 사회를 신경써야 하냐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내가 이 세계를 위해 일해야 하나?
날 위해 일하는게 훨씬더 낫지 않나?
고작 이런사람들을 위해 일해야한다니
부동산가격이 올라서 집을 못사든 큰 상관없어하고
결혼을 못해도 의외로 큰 상관안한다. 만혼도 역시 큰 위기상황이 아닌거 같다.
아무런 문제를 못느끼겠다.
그런데 뭘 더 좋은세계를 만들려는 걸까?
이대로 천천히 사그라들어도 되는게 아닐까?
모두다 만족하잖아
나라면 그냥저냥 놀고먹다 죽어도 상관이 없다. 직장은 안잡고 놀아도 된다. 평생동안 한량으로 술만마셔도 그만이 아니지 않나?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하고 싶은거나 하면서 살자, 이세상이 멸망해도 큰 상관없지 않나?
 
그러자 그녀에게서 점점더 멀어졌다.
나는 점점더 편하고 쉽고 재밌는 길을 찾았고
그럴수록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이게 가장 큰 이유였다.
아니 이 이후로 나는 그녀에게 공감하지 못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현실에 만족하며
불만족스러우면 한국을 떠나서 만족하며 살아간다.
행복한지는 모르겠다.
 
그럼 내가 왜 이 세상을 위해 일해야 하는걸까?
벵가리들은 빈곤속에서 허우적댄다.
그런데 그들도 악하다면 왜 그들을 위해 일해야 하는걸까?
왜 날 위해 일하면 안돼지?
 
그런데 그럴수록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왜일까?
왜인지 알수가 없다.
 
왜냐하면은 날위해 일하면 일할수록 그녀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어진다.
향락에 찌들수록 그녀의 생각을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그녀가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힘들게 사는지
어째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때 어떻게 느꼈는지 그 모든걸 공감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라면
내가 그녀를 사랑했던 이유가 내 과거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현실을 더 낫게 만들려고 했던 이유이고
그게 내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더나은세계를 위해서였다면
그 테제는 언제나 성립한다.
그럼 그들은 어째서 그렇게 행동하는걸까?
모든 사람들이 제도에 대해서 최적화된 행동을 한다면
결국 성장이 끝난세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 걸까?
냉소와 연민이 날 사로잡은 걸까?
그런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마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을거다.
내가 변하자 순수한 그녀가 떠나갔다.
다시 내가 돌아간다고 그녀가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데 만약 신경계를 찾으려던 행동이 결국
내 이익을 위해서였다면
나만의 자기만족을 위해서였다면
그녀가 떠나간건 당연한 건지 모른다.
 
보다 더나은세계가 있냐고 나는 여기와서 언제나 회의를 가졌다.
과연 그런게 있을까 하고
그런건 집속의 향락에만 있는게 아닐까?
내 고향, 내 집
내 집속에도 향락이 있고, 그리고 신경계가 있겠지만
결국 꿈을 찾는 건 나인게 아닐까?
아직 이 세상에 끝나지 않고
보다 더 나은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를 위해 사는게 더 낫지 않을까?
그녀가 떠나간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그게 결국 3대째의 내가 할 일이 아닐까?
I'm love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질투나 하는것보다
성숙하지 못했다.
하고싶은것만 하고, 하기싫은 건 하지 않고
부모님에게 의존하려고만 하는 내게 천벌이 내린게 아닐까?
신경계를 공부하려면 자금은, 그러면 왜 여기에 온걸까?
왜냐하면 군대니까
하지만 나름 의미도 있지 않았나?
그래 그런데 왜 환상이 깨지는걸까?
왜냐하면 내가 잘못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일 멋진말이었다.
그런데 그에 비해
나는 폼나는 일이나
인기가 많아지는 일을 하고 싶었고
신경계를 이해하고 싶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더 인기가 많아지고
여자한테 인기가 더 많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만 했었다.
상한가를 치는거다 드디어, 굴욕적인 세월을 버려버리는거다.
 
난 결국 아직 빈곤층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실 나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료들도 만족하며 살아가는 걸 보고(일은 즐겁게 하지만)
타인에게 공감하지 않고
술과 놀이 게임 음악에 빠져버렸다.
그런데 옮지 못했다.
그래서 잃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스누라이프에는 분명 순수한 여자는 순수한 남자와 맺어진다고 써있었다. 그런데 내가 순수해지면 당연히 신경계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을까? 근데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거지
 
아마 옮지 못한일을 너무 계속했던 거 같다.
내 순수한 열정은 언제나 이 세계를 변화시켜 더 나은 세계로 바꾸어낸다.
신경계는 언제나 취미이지 순수한 열정의 대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 실험을 잘못하기 때문이다.

모든걸 잃었다.

난 전시회를 준비하던 때의 모습을 더 사랑햇다.
날 위해 기다려주던 모습을
 
그녀가 변햇던건 봄이왔고
나는 한눈을 팔고 있었다.
 
아니 나는 힘들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두 편하게 지내니
나도 그냥 편하게 지냇다.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여성들이 있었다.
그들과 예기를 하는 가운데 나는 변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그녀도 변했다.
 
우리둘은 함께 있었어야 했다.
함께 같이 변해갔어야 했다.
그러지 않아 헤어졌다.
 
영원히 함께하고 싶었는데
 
함께 현지를 극복하고
함께 하고 싶은걸 찾고
함께 다시 순수해지고
 
조금씩 벌어지는 격차를 매웠어야했다.
내가 변하는 만큼 그녀는 더빨리 변했고
나에게 새로운 여자들이 찾아오는 만큼
그녀에게 새로운 남자들이 찾아왔다.
 
나는 그녀들을 버렸고
그녀도 그들을 버렸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어떤 면을 맞추지 못했고
그녀는 나의 어떤 면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실 뭐 거의 완성이 됐으니
대립은 끝내고 이제 합쳐져야겠다.
 
내가 하나를 또 실수했었다. 난 그녀를 위해 살지 않고 내 만족을 위해 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떠나갔다. 그뿐이다.
 
그녀를 위했었다면 난 그렇게 행동하지 말았어야했다.
적어도 그녀를 계속 생각했어야 했다.
내가 갑자기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왜 내가 갑자기 편하게 살고 싶었졌을까?
아니였군 내가 잘못했었다.
그녀가 혼자 힘들어했을 때 곁에 있어줘야 햇었다.
아아아아
모든걸 잃었다.